1 동학 신도들이 갑오甲午(道紀 24, 1894)년에 참패를 당한 뒤로 감히 나타나지 못하고 잠잠히 지내더니,
2 일본에 망명해 있던 동학 3세 교주 손병희孫秉熙가 '일본과 동맹국의 입장에 서는 것이 조선의 근대 개혁과 국제적 지위 획득에 유리하다.' 생각하고,
3 갑진년에 이용구李容九를 조선에 보내어 동학 교도를 수습하여 민회民會를 조직하게 하니,
4 이에 응하여 사방에서 동학 신도들이 다시 일어나 그 세력이 날로 커지매 백성들은 갑오년에 본 그들의 난폭한 행동을 떠올리고 두려운 마음을 품더라.
5 하루는 형렬이 상제님 계신 곳을 찾아갈 때 마침 동학 신도들이 원평에 모여있는지라.
6 상제님을 뵙고 그 일을 고하니 상제님께서 "속히 원평에 가서 그 모임의 취지와 동향을 조사하여 오라." 하시므로,
7 형렬이 명을 좇아 탐사하여 보니 그 모임의 명칭은 진보회進步會요, 목적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이요, 대회 장소는 충남 강경江景이라.
8 곧 돌아와서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저들의 이번 운동에는 각기 제 재산을 쓰게 할 것이요, 갑오년과 같이 백성에게 폐를 끼치지 못하게 하리니,
9 나부터 먼저 망하여 모범을 보이리라." 하시니라.
<콘텐츠 출처 - 증산도 도전道典 3편 9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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