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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입도/『월간개벽』

[입도 수기] 더 높은 차원의 대도 진리를 만나 (월간개벽 2015년 01월호)

by hopyumi 2020. 6. 19.




안산상록수도장 김옥순(54) 

2014년 음력 8월 입도 



  
자연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춘하추동 사계절을 끊임없이 반복 순환합니다.  

그 속에서 인간은 선택의 권리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며, 그저 주어진 환경과 부모 밑에서 생로병사의 틀 안에 갇혀 살아가다가 죽기 싫어도 죽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초등학교 나이의 어린 철부지 시절에 저는 시골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비 오는 날, 부모 형제가 일을 못 나가고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죽은 듯 잠자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죽으면 긴 세월을 저렇게 누워서 잠만 자야 하나?' 하고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제가 15살 때, 아버지는 높은 산 채석장에서 일하시다가 돌과 함께 산 아래로 굴러 떨어져서 불행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로 3녀 1남의 저희 가족은 끊임없는 가정불화로 되는 일 없이 침울하게 살았습니다.  


23살 때 대학교를 졸업하고, 엄마가 떠나가고 없는 고향집에 쓸쓸이 남아있던 시절, 외로운 마음에 의지할 수 있는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상견례를 하던 그날, 가족들끼리 소리높여 싸움이 났고 결국에는 남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부모 형제가 어떻게 나의 혼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무엇 때문에 우리 집안에는 평안이 없고 불행만 있을까?' 하고 고민을 하였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점쟁이를 찾아가니, 아버지 산소자리에 물이 차서 이장하라고 하였습니다.  

24세의 어린 나이에 친척의 도움을 받아 산소를 옮겨드렸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가족들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갈등은 갈수록 커졌습니다.  

저의 결혼식 날에도 울고불고 야단이 나서, 결혼식을 쫓기듯이 치르고 울면서 친정집을 떠났습니다.  


결혼 생활도 외로웠습니다.  

30대에 은행에서 회계 업무를 보는 좋은 직장에 다녔고, 예쁜 딸도 키우며, 남부러워하는 아파트에 사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외로움에 빠져있었습니다. 
  

1991년 어느 날, 저희 동네에 기氣 수련을 하는 학교가 들어오면서 제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로 고생했는데, 32살 되는 해에는 급기야 좌골신경통이 오면서 허리와 다리를 못 쓰고 누워 앉았습니다.  

병원 치료를 받아도 큰 효과가 없어 마냥 앓고 있던 중에 기공 수련을 하게 된 것입니다.  


첫날에 기공 수업이 끝날 무렵, 강사 분께서 단체로 병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기 치료가 진행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프던 허리와 다리가 굳어져 움직일 수가 없었고 꼬집어 봐도 통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기치료가 끝날 쯤, 저 하늘의 검은 구름이 바람에 밀려가는 것처럼 몸의 아픈 기운이 머리에서부터 발로 밀려나가는 느낌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렇게 30분의 기치료가 끝나고, 제 허리와 다리가 통증 없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놀랍고 믿기 어려운 체험이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기 수련에 매료되었습니다.  

기 수련에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씩 더 깊이 파고 배우며 수련하여서 입도하고는 본격적으로 기공의 진리를 탐구하였습니다.  

힘들고 외롭고 쓸쓸하던 제 삶이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오대산 절의 부처님 불상을 바라볼 때도, 자비정사 초하루 법회날에서도, 강원도 수련 도장에 참배 갈 때도 아무런 생각 없이 울고는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건대, 만나야 할 참 진리를 만나지 못해서, 그리고 그동안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와서 그렇지 않았나 싶습니다. 


체증과 두통 증상으로 병원 치료를 할 때, 또는 술 마신 남편과 다투다 쪽잠을 잘 때면, 가끔씩 푸른색 바탕의 큰 사진 액자 속의 멋진 남자분이 천정에서 말없이 지켜보다 가고는 했습니다.  

그때는 기 수련을 할 때여서 '스승님이 오셨나 아니면 조상님이 오셨나' 하고 궁금했습니다.  


2006년 빚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들 때도 꿈 속에서 액자 속의 그분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네가 힘들고 어려운 걸 내가 다 알고 있다. 너를 도와줄 두 사람을 보낼 터이니 두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 꼭 시키는 대로 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금은보화와 지폐·동전이 방 안에 가득했습니다.  

'이 돈이면 빚을 다 갚을 수 있겠구나!' 하고 좋아서 금은보화를 끌어안다가 꿈에서 깼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두 사람의 안내로 ○○진리회를 만났습니다.  

거기서 8년 동안 조상님의 뜻이라 여기고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에게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은 아프지만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합니다.  

제 주관이 분명하다 보니, 그쪽에 있으면서도 제 생각에 비추어 옳거나 타당치 못하다 싶으면 솔직히 터놓고 말하고는 했습니다.  

이러는 저를 두고 그쪽 간부들이 너무도 힘들다고 했는데, 오히려 저는 그들의 행동거지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윗분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제 자신이 그들과의 마음의 거리가 점점 멀어짐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의 소개로 STB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 나는 ○○진리회를 졸업하고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대도 진리인 증산도를 만나서, 더 큰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배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대전에 가서 대천제에 참석하였습니다.  

또 도장에 방문하여 진리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마침내 증산도에서 입도 치성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신기하게도 남편의 주정도 줄었습니다. 


생각해 보건대, 부모님과 조상님이 계시므로 오늘의 제가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조상님의 공덕이 큼으로 인해 제가 상제님의 대도 진리를 만났고, 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딸 가진 부모로서, 조상님의 마음, 그 정성과 희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태상 종도사님께서는 "조상은 자손의 뿌리요, 자손은 조상의 숨구멍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복마의 발동을 이겨내고 피눈물 나는 생사의 고비를 넘기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행을 하는 가운데 많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였습니다.  

제가 상제님 신앙을 함으로써 가족과 친지들의 불상사만 없앨 수 있다면 그 밖의 모든 어려움은 다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여명 전에 캄캄칠야가 있는 법이고, 비 온 뒤에 칠색무지개가 빛나는 것처럼 지금 저의 처지가 다소 어렵고 힘들지만 조상님과 함께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참 하늘 참 땅이신 상제님과 태모님, 일월의 대사부이신 태상 종도사님과 종도사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받들겠습니다.  

증산도로 인도해 주신 조상님의 뜻을 바르게 받들어 이곳에서 '사람을 살리는 공부'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 한 사람의 노력으로 세세대대 내려오면서 살아오신 조상님들의 뜻을 이루고, 개벽기에 부모 형제 모두 무탈할 수 있는 이 성스러운 공부를 천하에 펼치는 참된 일꾼이 되겠습니다. 




[이 외의 다양한 도전 내용은 인터넷 증산도 도전(www.dojeon.org)에 가시면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콘텐츠 출처 - 월간개벽 www.greatop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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