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사년에 경석이 유람을 떠난 후 대흥리 차경석의 교단에서 연이어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므로 관할 경찰서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감시하는데,
2 무오년 동짓달에 제주 신도 문인택文仁宅이 성금 10만여 원을 면화 포대 속에 감추어 가지고 나오다가 목포항에서 발각되매,
3 차윤칠을 비롯한 방주 18명이 체포되어 목포 경찰서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거늘,
4 이 때 경석의 교단에서 이상호李祥昊가 사건 해결의 담당자로 나서서 모든 책임을 태모님께 떠넘기니라.
5 이에 25일 정오쯤에 순사들이 태모님을 체포하려고 조종리로 찾아와 사성에게 태모님 계신 곳을 물으니,
6 응칠이 태모님께 달려와 이 사실을 아뢰며 걱정하여 말하기를 "반드시 화禍가 있을 듯하오니 잠깐 피하시옵소서." 하매,
7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미 알고 있노라. 그러나 이번에 내가 순하게 받아야 뒷일이 없을지니 피하는 것이 불가하니라." 하시고,
8 즉시 소멸음해부消滅陰害符에 해마주解魔呪를 적어 불사르신 다음 태연히 앉아 계시니라.
9 얼마 후 순사들이 응칠의 집으로 들어와 태모님의 행방을 찾으므로 태모님께서 순사들을 불러오게 하시어 몇 마디 말씀을 나누신 뒤에 응칠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되시니라.
<'무오년 옥화' 이후>
10 태모님께서 응칠과 함께 정읍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지내시고 이튿날 목포 경찰서에 이송되어 심문을 받으시되 별다른 증거가 없는지라.
11 응칠은 섣달 12일에 석방되고, 태모님께서는 38일 만인 그 이듬해 기미己未(道紀 49, 1919)년 정월 초사흗날에 석방되시니,
12 세인들은 이를 일러 '무오년 옥화獄禍'라 하니라.
13 이로부터 태모님께서 농사에 마음을 두시고 몇 년 동안 한가로이 지내실 뿐이더라.
<콘텐츠 출처 - 증산도 도전道典 11편 49장>
'증산도 도전 살펴보기 > 고수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증산도 도전] (11-51) 수석 성도 고민환의 입도 (0) | 2021.04.22 |
---|---|
[증산도 도전] (11-50) 조종리 도장 성전 건축 (0) | 2021.04.22 |
[증산도 도전] (11-48) 수화중이라도 나를 따르겠느냐 (0) | 2021.04.22 |
[증산도 도전] (11-47) 오두막집에 한 달간 머무르심 (0) | 2021.04.22 |
[증산도 도전] (11-46) 성씨 하나 보고 가노라 (0) | 2021.04.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