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진리 (입문)/『생존의 비밀』

[생존의 비밀] (1-2-3) 서구 근대의 문을 연 흑사병

hopyumi 2021. 1. 1. 12:07





아테네에서 벌어진 상황과 기이할 정도로 유사하게 인간 사회를 해체시킨 또 다른 전염병이 있었다. 

바로 서양의 중세를 무너뜨린 흑사병(Black Death)이다. 

페스트라 불리는 흑사병은 '역사상 최악의 연쇄 살인마' 라고 일컬을 정도로 이미 인류에게 자연 재앙의 공포를 상기시키는 문화적 상징이 되어 있다. 

현재 의학계에서는 이 흑사병을 앞으로 일어날 병란 상황의 모델로 놓고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흑사병'은 몸이 새카맣게 되면서 죽는 병이라는 뜻이다. 

쥐벼룩으로 감염이 되는데, 이 병에 걸리면 불에 데었을 때 나타나는 수포처럼 생긴 종기가 몸의 구석구석에 생겨나면서 고열과 발작이 일어난다. 

종기가 작은 사과나 달걀 만하게 커지면 극심한 고통과 함께 피를 토하고, 사나흘째 되면 온몸이 곪아서 죽게 된다.


본래 흑사병은 중국 운남성의 풍토병이었다고 한다. 

13세기 중반, 몽골제국의 황제 뭉케(1208 ~ 1259)가 남송제국을 공격하기에 앞서 교두보 확보를 위해 운남 지방을 정벌하였는데, 이때 흑사병 균이 몽골 군사에게 전염된 것으로 본다. 

이것이 1300년대에 전 세계에 불어닥친 급격한 기후 환경 변화 때문에 창궐하게 되었다. 

몽골 군대와 함께 북쪽으로 올라간 흑사병은 1331년에 북경에서 대발을 하였고, 북경 인구의 3분의 2가 이 전염병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흑사병은 유라시아 실크로드를 타고 유럽으로 퍼져 갔다.


1346년, 흑사병은 현재의 흑해 연안 크림 반도의 항구 도시인 카파(Kaffa)에 도착하였다. 

당시 이 도시는 3년 동안 킵차크한국(몽골제국에 속한 나라)의 통치자인 야니벡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제노바의 상인들도 갇혀있었다.

흑사병은 먼저 도시를 포위하고 있던 몽골군을 습격하였다. 

몽골의 병사들이 죽어 넘어가자 야니벡은 살아남은 군사들과 철수하면서, 투석기를 사용하여 감염된 시체를 카파의 성벽 안으로 던져 넣었다. 

성 안의 사람들이 시체를 성벽 너머 바다로 다시 던져 버렸지만, 페스트는 이미 도시 안에 퍼진 상태였다.

1347년, 몽골군이 철수한 뒤 자유를 찾은 제노바 상인들은 성에서 나와 배를 몰고 이탈리아로 향했다. 

그들과 함께 흑사병도 지중해의 다른 항구로 빠르게 번져 나갔고, 1350년에는 전 유럽에 전염이 되었다.


폐 페스트나 패혈성 페스트에 걸린 사람들은 아침에 멀쩡하다가도 밤이 되기 전에 피를 토하며 죽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 병을 '떼죽음(Big Death)' 이라 불렀다. 

흑사병은 1347년부터 1351년 사이의 짧은 기간 동안 맹렬한 위세를 떨쳤다. 

최소한 유럽 인구의 3분의 1, 전 세계에서 7천5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한 생존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졌다.

"아버지는 자식을 버리고, 남편은 아내를, 형은 동생을 … 아무도 돈이나 우정으로 죽은 이를 매장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주야로 수백 명씩 죽어갔고 모두가 구덩이에 버려져 흙으로 덮였다. 

 구덩이가 메워지자마자 더 많은 구덩이를 팠다. 

 나, 투라의 아뇰로는 이 손으로 내 다섯 아이들을 묻었다."


교회도 흑사병을 피할 수 없었다. 

어떤 교구에서는 성직자의 70~80퍼센트가 이 병으로 죽었다. 

교황의 탄식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교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허망하게 죽자 사람들은 교회나 봉건 제후 대신 페스트에 비교적 신속히 대처한 도시 정부를 더 믿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공용어였던 라틴어 대신 각국의 세속 언어가 공식 문서에 쓰이기 시작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식과 태도의 변화였다. 

흑사병은 인간으로 하여금 중세의 기독교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질에 눈뜨게 하였다. 

그리하여 화가들은 천상에 대한 그림보다는 고뇌하고 고통에 찬 인간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이로써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마련되고,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등 바야흐로 문명의 대전환이 시작되었다.


또한 수많은 농노의 죽음으로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임금이 상승하였다. 

농노들은 귀족의 부와 권력을 잠식하여 차츰 소작인, 소지주(자작농) 또는 장인으로 독립하였다. 

흑사병은 엄격했던 사회 계층 구조를 흔들어 유럽의 중세 봉건 사회를 무너뜨리고 근대 자본주의를 발흥시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흑사병은 1천 년 동안 지속되었던 유럽의 중세를 막 내리고 근세로 이행하도록 '인류 역사의 행로'를 바꾸어 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꼭 강조하고 싶은 의학사의 사실이 하나있다. 

흑사병이 유럽을 한창 휩쓸던 때에, 환자를 간호하던 일부 단체의 수도사들은 감염이 되었어도 쉽게 회복되었고, 한 번 앓고 나면 면역력이 생겨서 다시는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도修道가 병을 이겨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이 책 제3부에 생존을 위한 수도(수행) 이야기가 나와 있으니 독자들이 주의 깊게 읽어보기를 권한다.




(목차 - 제1편 더 큰 병란이 몰려온다 / 2. 인류 문명사를 바꾼 전염병 / (3) 서구 근대의 문을 연 흑사병)

(콘텐츠 출처 - 『생존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