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입도/『월간개벽』

[입도 수기] 진리의 새 지평을 열어주신 말씀 (월간개벽 2014년 11월호)

hopyumi 2020. 6. 7. 22:05




대구대명도장 김재용(62) 

2014년 음력 6월 입도 


  

한 생生이 찰나인 것을, 인연이 아니었던 십년의 결혼 생활을 청산한 후 노모와 두 아들과 함께 살아온 세월은 종교 편력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생사가 고苦라면, 생사가 곧 죄악이 아닐까요?  

참회문을 쓰라면 제 행行이 하나도 예외없이 회한으로 채색될 것 같습니다. 

삶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사람은 자기 내면을 향하여 성찰과 '왜?' 라는 존재의 화두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진리는 가장 수승殊勝한 하나일진대, 문과 길은 참으로 많습니다.  

이혼 후의 정신적 고통과 방황은 겪은 자만이 알 것입니다. 

그리하여 휴가 때, 휴일 때 등산과 여행은 저에게 최고의 위안이었습니다. 

까불고 웃으며 나를 따르는 예쁜 두 아들에 대한 그토록 슬프고 미안한 마음은 그들이 전역과 졸업할 때까지 내 마음 속 깊이 어두운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서른 초반 나이에 만난 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정신적 스승이었습니다. 

"일어난 곳을 보라."는 말 한마디에 저는 석존이 밝힌 그 자리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한 생각 일으키는 것과 하늘 한 번 쳐다보는 것과 그 무게가 어떠냐?"는 말에 "같습니다." 하고 대답한 후 유식 공부에 빠졌었습니다. 


"만유가 식識이 전변되어…."  

실재를 공空으로 설파하는가 봅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변화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 하나를 체體로 삼고 하는 공부, 바로 참선입니다. 

그러나 교만인지, 생활에 쫓기는 것 때문인지, 저에게 두 친구가 찾아왔다.  

주신酒神과 농신弄神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진리회를 만났습니다. 

이곳에서 권 선감을 만났고, 상제님을 만났고, 태을주를 만났고, 태을주의 신비도 경험했습니다. 

또 선천, 후천, 신명, 귀신 등 색다른 단어들을 만났습니다. 


내가 아는 마음은 문도 문틀도, 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허나, 여기서는 "심야자 귀신지추기야 문호야 도로야." 라고 해서 색다른 뉘앙스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귀신에 대한 의문 그리고 마음에 대한 설명이 미진함도 있었지만, 또 다시 생활 속에서 주신 및 농신들과 어울려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도자는 저를 낚시하려고 5년에 가까운 세월을 공들였습니다. 

여기에서 귀신과 역易과 신명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타 종교를 길가의 잡초 밟듯이 밟았습니다. 

개벽 때, "종교를 따르지 않으면 다 괴질에 걸려 죽고, 종교인은 사악해서 그리고 의사는 생명을 가지고 장난했기 때문에 죽는다."고 했습니다. 

생명을 가르치는 교敎라고 했지만 사실 역逆이었습니다. 

타 종교를 비판하려면 적어도 그 도장의 마룻바닥도 공들여 닦고, 화장실도 깨끗이 청소해 보고, 그 땅바닥에 입 맞춰 보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긴가민가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그 종교는 결국 사람을 피조물이라고 단정지었고, 저는 또 나오고 말았습니다. 

같은 개념의 말을 차별성과 수승함을 표방하기 위해, 예를 들어 전도, 포덕, 포교 등을 내세웠습니다. 

수승殊勝하다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수승한 것일 뿐입니다. 

진실로 수승한 것은 대비도, 비판도 배제하는 게 아닐까요? 
  

앞으로 도道나 종교 같은 것으로 저에게 접근하는 자는 용서치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텅 비어있는 조용한 마음은 그냥 있지 못하고 또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죽기 전의 영혼의 청소와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인연이 있어 전화한 곳이 (제 기억으로는) 대전의 증산도 본부였습니다. 

『천지성공』을 택배로 받고, 대구대명도장을 찾았어도 세월만 보냈습니다. 


예전에 『천지개벽경』과 『개벽실제상황』을 읽고, 썩어가는 자연과 환경, 타락되어가는 인간의 도덕성, 분실되어버린 본성을 걱정했었습니다. 

인人개벽과 자연개벽의 역사적 필연성과 당위성을 깊이 생각해 보았고, 신명 공사란 말에서 신神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신이 보일 듯 말 듯, 알 듯 말 듯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이 이치를 밟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신 속에 신학의 신을 대입해도 튕겨져 나오고, 심心을 대입해도 튕겨져 나왔습니다. 


도장에 가끔 가서 책을 사 보면서도 입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상생방송 7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고자 태을궁에 갔습니다. 

행사 중 종도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원죄를 '상극' 이란 한 마디로 파괴시킬 때, 해변에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는 듯한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또 영혼관은 불교의 유식 사상(제8식 아뢰야식)에 비해 더 잘 되어 있었습니다. 

당신의 그 위대한 겸허로 인해 대양 깊숙이 가라앉는 저의 영혼을 느꼈습니다. 


또한 근본 공부에 너무 깊이 파지 말고, 행行을 통한 수행 공부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후천의 종교는 실천 종교라고 조용히 받아들였습니다. 

이 점은 저의 큰 단점이기에 부끄럽고, 제 자신에게도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환갑을 넘기고 진갑의 철봉에 매달린 너덜하고 초췌한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늦다! 늦다! 더 없이 늦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  

하지만 누에의 비유를 들은 후 생각이 바뀌였습니다. 

'옳다! 옳다! 남은 복이 더 크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을 잘하는 자, 아는 것이 많은 자는 도 닦기가 어렵다고 했었습니다. 

'큰 바보가 되자!' 


행사에서 돌아온 뒤 후배에게 『성유식론成唯識論』을 빌려주고 종교와 과학의 본질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밤까지 음주를 즐겼습니다. 

이튿날, 제가 불러들인 복마로 인해 한 달여 동안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며 심히 앓았습니다. 

그리고 강 수호사님과 권 포감님의 깊은 배려로 마침내 도적부에 제 이름을 적었습니다. 




[이 외의 다양한 도전 내용은 인터넷 증산도 도전(www.dojeon.org)에 가시면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콘텐츠 출처 - 월간개벽 www.greatopen.net)